240만원 내고 책을 읽는다?…'공간을 구독' 합니다

입력 2020-10-22 17:42   수정 2020-10-23 02:21


서울 영동대교 남단 청담동 자이 아파트 건너편 한적한 주택가. 대형 블록을 삐뚤빼뚤하게 쌓아 올린 듯한 독특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2월 개관한 ‘소전서림(素書林)’이다.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의미의 건물 이름처럼 외벽엔 50㎝, 두께 4㎝가량의 흰 벽돌이 층층이 쌓여 있다. 리움미술관, 교보타워 등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의 작품이다. 지하 1층에 도착하자 20세기 영국 표현주의 회화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의 석판화 ‘앵그르 이후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가 방문자를 반긴다. 4m 높이 천장 아래 펼쳐진 서가에는 장서 4만여 권이 ‘책 숲’을 이루고 있다.

서가 곳곳엔 소파, 1인용 좌석, 리클라이너 등 다양한 의자가 놓여 있다. 프리츠한센, 핀율, 노만 코펜하겐, 카시나, 프레데리시아, 아르텍 등 유럽 최고급 가구 브랜드 제품이다. 벽에 달린 간접 조명들이 내부를 화사하게 밝힌다. 건축가인 최욱 원오원아키텍츠 소장 손끝에서 탄생한 실내 풍경이다.


소전서림은 국내 첫 멤버십형 유료 문학도서관이다. 입장하려면 5만원인 종일권(12시간)이나 3만원인 반일권(5시간)을 구매해야 한다. 연회비가 66만원인 연간 회원은 반값에 입장한다. 입장료 없이 이용하려면 240만원의 연회비를 내야 한다. 서가에서 만난 황보유미 소전서림 관장은 “도서관의 주된 목적이 책을 읽는 공간이기에 따뜻하고 편안한 조명 아래 책 읽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안락한 의자와 가구를 찾았다”며 “소전서림의 차별점은 이용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완성도”라고 설명했다.

소전서림은 ‘프라이빗 도서관’ ‘집 밖의 서재’를 기치로 내걸었다. 총 85개의 좌석이 있지만 40석 이상을 채우지 않는다. 오롯한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싶다면 별도로 마련된 1인 열람 공간에 들어가면 된다. 황보 관장은 “책을 매개로 주어진 나만의 공간에서 여유를 즐기는 ‘공간 구독’이란 개념으로 소전서림을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인 서재’ 이상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용자가 요청할 경우 북 큐레이터들이 독서 경험과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해준다. 커피나 음료를 주문하면 자리에 가져다준다. 저녁엔 와인을 한잔하며 책을 볼 수도 있다.

소전서림은 김원일 골프존 창업자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공익 문화재단 WAP파운데이션의 후원으로 탄생했다. 소전서림 건물은 원래 미술갤러리였다. 작게나마 지식 생태계 플랫폼을 구축해보고 싶다는 김 이사장의 열망이 소전서림이란 파격적인 실험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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